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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장르 soul에 대해

MinJV님 | 2015.10.01 17:54 | 조회 26
소울이란 '영혼'의 뜻이다. 흑인음악으로서 어떤 카테고리나 스타일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이 아니고, 여기서는 테크닉 이전의, 가장 자연적이며 인간적인 소리와 리듬이 존중되고 있다. 

흑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여 공장노동자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그들이 즐기던 음악이 세련된 도시 음악인 '재즈'라는 음악과 융합을 이루게 되어 'race music'이라 불리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그 이후에 이 음악은 'rhythm & blues'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 R&B라고 알려진 이 음악은 백인들 사이에서 인기(주목)를 끌게 되면서 인위적으로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었다. 하나는 백인들만을 위한 'rock & roll'이고 다른 하나는 흑인들만을 위한 'soul'이었다. 

소울을 의미있게 만든 것은 1960년대 민권운동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 공민권 운동이었다. 이 무렵 흑인들은 그동안 당연시해오던 멸시와 푸대접의 굴레를 벗고 자신들의 권리회복에 나섰다. '우리가 백인보다 못할 게 뭐냐?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그런 의문은 곧바로 백인지배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1960년대 중반 이후 도시 흑인빈민가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연쇄적으로 발발했다. 당시 미국의 내전을 방불하게 했던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의 경우 이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만 만6천명이 파견되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분노한 흑인, 강경해진 흑인들의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연히 몸을 흔들어대며 외쳐대고 질러댔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울이었다. 이 때부터 유명한 빌보드 차트는 흑인음악 용어를 리듬 앤 블루스에서 소울로 바꾸었다. 흑인들은 서로를 소울 브라더, 소울 시스터라고 일컬었고 '소울 트레인'이라는 TV 프로가 신설되었다. 단맛의 포테이토 파이와 같은 소울 음식도 등장했다. 흑인에 관한 한 모든 게 소울이었다. 

소울은 한마디로 흑인 공민권운동에 의해 배양된 '흑인들의 자긍심'을 반영했으며 그 형식은 샤우트가 대변하듯 '분노의 폭발'을 취했다. 흑인들은 이 무렵 2백년 가까이 이어져온 움츠린 자세를 버리고 어깨를 펴고 거만하게 팔자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록 평론가 아놀드 쇼는 소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소울은 흑인들의 거만(sass) 분노(anger) 격노(rage)다.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신념이며 멋이 아니라 힘이다. 그것은 의식의 폭발이며 흑인들 자존(self-pride) 힘(power) 그리고 성장에 대한 잠재력(potential for growth)에 대한 각성으로 점화된 것이다." 

 '소울의 대부'로 불린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은 "소울 음악과 민권운동은 손에 손잡고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또 하나 별명인 '미스터 다이너마이트'답게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노래로 흑인들의 분노와 한을 표현했다. 소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수는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소울의 여왕'이란 칭호를 가지고있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다. 그녀의 1967년 히트곡 '존경(Respect)'은 디트로이트 폭동 때의 흑인시위대의 찬가로 불려졌고 그래서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아레사는 국내에서도 방영된 1997년 '디바스'라고 하는 유선방송 프로에 나와 머라이어 캐리와 셀린 디온 등 당대 여가수들을 주눅들게 하는 열창으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은 '소울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레이 찰스(Ray Charles)는 '소울의 전설'로 꼽힌다. 이밖에 윌슨 피켓, 퍼시 슬레지, 샘 앤 데이브도 유명하며 1970년대에는 알 그린(Al Green)과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독특한 소울로 일세를 풍미했다. 소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음악사의 별들로 숭앙되고있는 이들의 최소한 히트곡 모음집은 챙겨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 가운데 퍼시 슬레지(Percy Sledge)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When a man loves a woman)'가 가장 잘 알려진 소울 곡일 것이다. 이 곡은 발표 당시인 1966년에도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나중 1991년 마이클 볼튼이 다시 불렀을 때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마이클 볼튼은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다. 그처럼 백인이 구사하는 소울을 사람들은 화이트 소울 또는 블루 아이드 소울(푸른 눈의 소울, 즉 백인소울이란 말)로 부른다. 화이트 소울 가수들은 소울을 백인도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백인들은 설령 고음을 구사해도 흑인들만의 진한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울은 결국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노래부르는 사람의 혼과 자세와 결부되어있다. 따라서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이라는 사회사를 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주 혼동되는 리듬 앤 블루스와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렇다면 현재 흑인들의 저항의식을 담고있는 힙합은 '이 시대 소울'이 된다. 

 소울은 대중음악이 한때의 유행가가 아니라 시대에 맞선 예술가의 정신과 혼의 결과임을 가르쳐주었다. 음악 하는 사람에게 정신과 혼이 없다면 그 음악은 기계로 찍어낸 공장제품이나 다름없으며 진실하게 들릴 리 없다. 마치 소울이 없는 음식이 제 맛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많은 음악관계자들이 공장제품과 같은 음악들의 판치고 있는 지금, 1960년대의 소울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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